요한복음 10장22-30절
~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이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하신데 ~
오늘, 이날은 예루살렘에 수전절 축제가 있었다. 요한 복음서는 처음에 유윌절 축제가 있었다고 말하고, 「나는 하늘에서 온 생명의 빵이다. 」고 말하며, 다음에는 초막절의 축제가 있어서, 그 때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안식일에 일어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소동이 일어나, 요한 복음서는 유대인의 축제와 명절날에 일어난 사건을 제재로 한 내용이 씌어져 있다. 그리고 오늘 축제는, 『수전절』입니다.
이것은 기원전200년경, 그 당시는 시리아의 속령이고 시리아의 지배를 받고, 실질로 이스라엘 나라가 붕괴되고, 나라가 없는 그러한 시대에, 【마카비】란 【하스몬】집안 제사장이며 장군이 일어나, 게릴라 작전에 나가고, 전쟁을 이르켜 시리아의 이 왕들과 싸워 승리를 얻고, 이스라엘 국가가 정말로 몇백년 만에 독립, 회복하고, 예루살렘의 성전이 다시 세워져 해방된 절기가 수전절이다. 기원전 200년경에 일어난 역사적 명절인 것이다.
그 시대는 벌써 로마나 그리스의 문화가 들어오고, 거기의 발신들과, 우상이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것을 전부 파괴시켜, 그리고 율법과 성전회복을 위해 제단을 성별하고, 거기에 있는 기구, 제사장의 옷을 모두 새롭게 한 그 축제가, 수전절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겨울이었다고 있듯이, 「12월의 초막절」이라고도 부른다. 12월25일이 이 축제의 날이에요. 그러므로 다른 『유월절』이나 『초막절』에 비교하면, 새로운 축제에요. 그러므로 유월절이나 초막절, 오순절이 저, 유대인의 위대한 명절에 비해서 이렛동안 한다는 기간은 같고, 그리고 『12월의 초막절』 이라 불리는 고로, 초막절과 똑같은 형식으로 일이 진행되지만, 유월절처럼 유대인, 이스라엘의 남자가 전원 예루살렘으로 순례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 지방따라, 자기들이 사는 지역에서, 수전절 축제를 했다. 그래서 여기서 예루살렘에서 수전절이 있었다고, 예루살렘 지명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역별로 이 수전절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명절을 행할, 12월25일에 성전안에 솔로몬의 행각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이 솔로몬의 행각은 예루살렘의 성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행각이 있어서, 그 동쪽에 있는 행각이 솔로몬의 행각이다. 서쪽은 곧바로 누설되어서 성전을 향하는 길이 있지만, 동쪽의 솔로몬 행각은 벽이어서 추운 겨울은 찬 동풍이 부는 그런 날에는, 동쪽에 벽이 있기에, 바람을 막아 주니까 많은 사람이 이 찬바람을 막는, 이 솔로몬의 행각 동쪽으로 모여 있었다.
그 날도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예수님이 등을 벽으로 하고 계시는 것을 보고 도망치지 못하게 사람이 삥글 둘러싸고, 유대인들이 예수님 주위에 모여들어 물었다. 「언제까지 우리를 애태우게 할 작정입니까?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우리에게 터놓고 그렇다고 말해 주십시오. 」그 질문할 때도, 예수님이 오늘 당장 대답해 주지 않으면 곤란을 겪는다는 기세를 가지고, 지금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근심을 시킵니까? 분명히 오늘, 수전절 날에, 우리에게 알려주세요.」 이것은, 이 수전절 축제가 시작된 200년전도 【마카비】집안이 승리한다고 아무도 정말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군은 적군에 비해 열세했다. 그리고 시리아군 세력이 강하고, 설마 이긴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설마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회복되다니 상상도 하지 못한 축제이었기 때문에,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닐 것이다. 설마 그럴리가 없다 라고 생각하여 있어도 그 때도, 승리한다는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어쩌면 오늘, 당신이 혹시 그리스도라면 지금 말해주라고 모여 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가 그리스도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어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가 전에 말하였으나, 너희는 믿지 않았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하고 대답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다, 하는 대답이 아니라, 이제 몇 번이나 이야기 했지만, 당신은 믿지 않았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가 다윗왕 같은 인물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왕이 『그리스도』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카비】처럼 제사장이면서, 무기를 손에 들고 게릴라 작전에 나가, 이 당시 【헤롯】왕은 몇번이나 마음대로 솔로몬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을 개축하고, 증축하는 중에, 그리고 이 로마제국으로부터 지배를 받고, 또 우상예배가 많이 들어와 있는 그런 시대에, 한번 더 저 【마카비】집안처럼 무기를 잡고, 힘을 모아서 로마제국이나, 【헤롯】왕족을 쓰러뜨리는 자가 일어나지 않을까? 그것이 그리스도이며, 해방자인 구세주가 아닌가?란 그들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오늘 그리스도라면, 분명히 말해 주고, 밝히라고 청원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알므로 「예, 그렇습니다. 」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리스도의 직무와, 인간들이 바라는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의 차이, 정의의 차이가 지나치게 컸으므로, 「그렇다」고 안합니다. 또, 「아니다. 」고 거짓말도 하지 못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몇 번 말했으나 여러분들은 전혀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여러분들이 바라는 그리스도는, 내가 말하는 그리스도가 전혀 다르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믿지 않는 것은, 여러분들이, 나의 양무리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고 대답하십니다. 그 이전에 『나는 참 목자다』하고 몇 번이나 예수님이 이 민중 앞에서, 군중들 앞에서 이야기하셨다. 그것을 들은 군중들도 어쩌면 다윗왕 같은 목자일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것입니다. 「너는 나의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않는다. 」 그것은, 그 이전에 예수님이, 「나는 선한 목자다. 나도 내 양을 알고, 내 양도 나를 알아본다. 그리고 양은 내 음성을 알고 있다. 」하신다. 그리고 한번 더 나는 목자다. 그러나 너희는 내 음성이 들리지 않다.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여기서는, 내 양은 나의 음성을 듣고, 나도 내 양을 안다. 내 양은 나를 따른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전은 이래요.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을 알고 있다. 」 그리고, 「내 양도 나를 알아본다. 」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 여기서는 다르다. 「나는 목자다. 내 양을 알고 있다. 」그 다음, 「양도 나를 알고 있다. 」가 아니라, 「그러므로 내 양은 나를 따른다. 」하는 표현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나는 내 양을 알고 있다. 내게 속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알려져 있는 그들은 따라온다. 」 인간측이 예수를 알 수도 없고, 인간측이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도 없고, 인간측이 하나님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양을 알고 있으므로 양은 돌아온다. 양은 따른다고 하셨다.
칼빈적인 이 『하나님의 선택』, 많은 사람이 반발해 이론을 외치지만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신앙 고백은, 완전히 이것을 긍정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해 구원 받은 사람은,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최종적으로 그 성도는 최후까지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다는 신앙 고백이 있어서, 예수님이 알고 있는, 예수님이 선택하고, 예수님에게 속해 있는 양은, 영원히 망할 일이 없다. 그들은, 예수가 그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에게 따라올 수 밖에 없다, 하는 하나님의 선택이란 의미다. 인간 스스로 뭔가 노력해서 알수있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사람들은 뭔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인가, 인자이며 메시아인가, 기름 부은 구약에서 예언하는 하늘에서 온 사람인가, 지금, 명확히 해 주십시오. 」
이 말은 인간측도 하나님을 알아보자는 태도입니다. 사람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보겠다하는 태도이다. 당장 분명히 대답해라. 사람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신과 동등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한테 하는 태도입니다. 그리하면 나도 믿습니다. 「당신이 만약, 지금 그리스도라고 말해 주면, 내가 당신을 믿고 당신에 따른다.」인간은 하나님을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알 방법은 없다. 그런데도 가르치면 되지, 알고 싶은데, 지금 당신은 대답해보라고 명령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결코 당신은 내 음성을 듣지 못하며 믿지도 않는다. 왜? 당신은 내게 속한 양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 인정하고, 또 믿음으로 인해서 구원을 얻고, 이 교리를 이해하는 지식은, 인간 스스로는 무리하다. 하나님이 가르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절대로 인간측에서는 모릅니다. 구원의 원리란, 인간의 무슨 사정이나, 열심이 아니고, 주님의 주권이다. 이것이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신앙 고백이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선물, 은혜입니다.
어떤 영국의 교회 성도가 목사한테 질문을 했다. 당신의 설교를 듣고 보면, 칼빈적이지 않다. 당신은 칼빈이 말한 교리를 믿지 않습니까? 목사에게, 불평을 했다. 그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칼빈의 성경해석을 믿고 있다. 반드시 성도는 최후까지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죄인이 보호 받을 수 있다고 믿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성도가 유지되는 것이지, 죄인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성도는 절대로 망할 일은 없고, 영원히 죽을 일도 없고, 반드시 구원 받는다. 이 교리는 변함이 없다. 예수님도 여기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양들을 내게 주신 나의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아무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내 양들을 빼앗을 수 없다.」 아버지가 내게 맡겨 준 영혼은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아버지는 능력이 있고 위대하다고 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완벽하며, 부정 행위가 없고, 부족함이 없으시다. 나의 아버지는 전지 전능하시고 창조주이며, 심판주이시다. 그리스도교의 교리입니다.
그 목사 말대로 영생을 유지하는 것은 성도이며 죄인이 아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지금, 내게 속해 있는 양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고 하셨다. 그러나 너희들은 절대로 믿지 않는다. 내게 속해 있는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내가 물어 볼 것이 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면 말해 보시오. 완전히 틀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스스로 안 적은 없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교리가 위대한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은혜이며, 나는 그것을 믿고, 또 믿고, 살아간다. 이것이 양이 하는 태도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이 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며, 영원한 아버지의 계획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성품, 지혜, 위대함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내 안에서 하나가 된다. 요한 복음서는 되풀이 이야기 한다. 그것은 너희도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용서하고, 전세계로 나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첫째로 구하라. 이것을 요한이, 새로운 계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며 기뻐하신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라고 예수님이 할 때, 그것은 아버지의 계획은 나의 계획. 아버지의 마음은 나와 같다. 아버지의 생각은 나와 같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나도 사랑하며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와 하나다. 너희도 예수의 이름 안에서 하나가 되라. 하는 것은,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나와 같은 길을 가라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머물며 따르는 사람이 예수에게 속한 양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에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원의 교리다.
에베소서2장 14-16절 ∼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평안을 누리고, 이 둘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마치 둘 사이에 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 같았으나,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심으로써 그 미움의 벽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 이 미움의 벽은 율법이나 너무나 많은 명령과 규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을 페하셨습니다. 이 둘을 갈라 놓던 율법을 없애심으로, 이 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새 사람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가 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 둘 사이에 가로막힌 미움의 벽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 이 둘을 하나가 되게 함으로써 이 둘 모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 ∼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모르고, 반항하고, 알 수도 없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는 절대로 불가능했습니다. 그것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하나님과 화해하며 그 미움의 벽은 십자가 위에서 전부 페하셨다. 하나님과 대립하는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고 하셨다. 이것은 모두 예수님에 인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을 하신다.
우리를 적대하는 모든 책무증서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페지하셨다. 내 공적도 아니고, 내가 특별히 뛰어나서 크리스천이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가 예수님에 의해 면제된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양심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사람에게 친절하게 해주고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 하나님보다 사람으로부터 평가를 받고 싶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 도우심을 구하며, 그대에게 맡겨진 진리를 소중히 간직하라고 편지를 보냈다. 진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복음입니다. 맡겨진 귀한 이 은혜를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바울이 생명 걸고 지킨 것은 이 복음이다.
믿음의 의는 죄 용서입니다. 믿는 사람은 값없이 죄를 용서받아 아버지와 화해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기뻐하며 주님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멘
0コメン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