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35-41절

~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내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이 9장을 전반적으로 보면, 소경의 이야기가 나오고, 마치나 하루, 이틀사이에 일어난 사건처럼 씌어져 있지만, 결과는 이 소경이 재판 속에서 예수를 예언자로 증명하고, 그것 때문에 회당에서 쫓겨나서, 바로 그를 예수님이 찾아가서 바리새인이 보고 있는 앞에서 이 대화를 나누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자 본인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어있는 그 본인인 예수님이 나타나서 바리새인이 보는 앞에서 성전에서 쫓겨난 남자를 붙잡아 이야기 건다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이것은, 잠시동안 지나서 예수님이 그를 찾아서 이야기한 것이 자연스럽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요한이 1세기말경에 이 복음서를 썼다는 사실을 보고, 1세기말의 크리스천에 있어서, 교훈을 얻을 수 있게, 그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유대교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사실은, 1세기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또한 현대 우리 크리스천에 대한 교훈인 것이 틀림 없다. 이 9장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소경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 인자를 믿느냐? 」하고 예수님이 물으실 때의 『인자』 하는 명칭은 당시 메시아를 표현하는 말로는 드물다. 그리스도라 불리거나, 여호와로 부르는 것이 메시아인 표시인데도, 여기서는 『인자』 하는 단어를 쓰고 있다. 그렇지만 유대인에 있어서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규약 때부터 메시아를 『인자』하고 부르는 구절이 있다.

다니엘서 7장 13-14∼내가 밤에 환상을 보고 있는데 마치 사람같이 생긴 분이 하늘 구름을 타고 왔다. 그가 영원 전부터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자 누군가가 그를 하나님께 인도했다. 하나님이 사람처럼 생긴 분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셨다.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기 다른 말을 쓰는 모든 사람은 그를 섬겨야 했다. 그의 다스림은 영원한 것이며 그의 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다. ∼

여기서 다니엘이 메시아를, 『인자』 라 표현하는 것을 보면, 이 소경이 『인자』란 누구며,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않할 것이다. 『인자』가 메시아이며, 그리스도이며, 구세주, 여호와, 하늘에서 내려 오신 분인 것을 이 다니엘7장을 들은 어떤 유대인에 있어서도 모를 수가 없다. 이 『인자』가 심판을 하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라는 것은, 유대인 속에서는 알려진 명칭, 단어이므로, 『인자』의 의미를 모른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자』가 도대체 어느 누구입니까?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것은, 나다. 」 대답하고 계십니다. 「『인자』가 지금 너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바로 나다.」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소경이 볼 때, 소경은 처음으로 예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전에 눈이 보이지 않을 때 예수님이 와서 진흙을 눈에 바르고, 【실로암】샘에 가서 씻어라, 그리하면 나으리라고 하셨을 때는, 예수님을 보지 않았다. 이 때는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뜨고 처음으로 예수님과 만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경이 예수님이 누군가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 당신은 누구세요? 」라고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는 인자다. 」 대답하신 것입니다. 이 남자는 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이 진흙을 발랐을 때도, 안보였다. 눈이 열었을 때에, 이 소경은 처음으로 앞이 보인 것입니다. 그때까지 구걸하던 사람이었다. 이전에 이 남자에게 있어서 세상은 지원해 주는 은인입니다. 언제나 도와주는 생명의 은인. 빵을 준 사람들이 이 세상이었던 것이다. 막상 눈이 보이게 되었을 때, 무엇이 보인가 하면, 처음에는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들은 「이 사람은, 전에 구걸 하던 맹인이 아닌가? 지금 보게 되었다니. 어쩌면 다른 사람이 아닐까? 」하고 비웃는 사람이 보이고, 좋았다고 같이 기뻐해 주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 다음에 본 것은 종교인들입니다. 위압적인 태도에다가 오만 하기 짝이 없는 형식주의의 유대교. 이제까지는 위대한 종교라고 믿고 왔지만, 소경일 때에는 이 유대교야말로, 우리를 구해 주는 종교라고 생각했었는데, 눈이 뜨게 되면서, 정말로 자기 명예밖에 모르는 교만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본 것은 부모입니다. 부모도 처음으로 본 것이다. 부모가 어떠한 사람이었나 하면 자신의 아들을 팔아버린 것입니다. 자기 살림이나 목숨 아까움에 「우리 아들인 것은 맞지만, 이 아들에게 직접 물어라」 핑계를 대고, 회당에서 쫓겨나는 것이 싫어서, 번명하는 부모가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소경을 내쫓는 종교인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도 모르고 소경의 눈을 뜨게 했다는 것마저 믿지 못하는 종교인밖에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매우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 세상도 자기한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겨 주는 상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백성을 가르쳐 주는 종교인은 위대한 선생님, 훌륭한 사람이 틀림 없다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뜨고 보게 된 순간 보인 것은, 인간의 더러움이었다. 이 세상의 더러움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보인 것이, 자기의 눈을 뜨게 해 준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처음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경이 이 세상을 알았을 때에, 구세주를 안 것입니다. 이 세상을 알며 구세주를 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시대에 프랑스에서는, 합리주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프랑스에서 갑자기 합리주의적인 생각이 일반 사람 속에 들어오고, 민중 안에는 합리주의적인,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논의를 좋아하고, 그 논의가 한창때, 나폴레옹이 지식인의 토론을 듣고 「이 예수그리스도는 과연 하나님인가? 혹은 인간인가?」 라고 했을 때에,「 인간이 틀림 없다. 인간일 수 밖에 없다.」 하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에, 나폴레옹은 일어서서 말했다. 「여러분! 」 「내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가 인간일 수가 없다. 」하고 대답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인간의 어리석음, 그리고 무지, 인간의 더러움을 알고 있었으므로, 만일 그것이 인간이라면, 성경에서 씌어져 있는 이 예수가 인간일 수 없다. 이것이 나폴레옹의 대답이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이 예수를 인간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를 좋게 보며, 마치 스스로 지식이 있고, 훌륭한 것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를 모른다. 예수가 보이지 않다. 그러나 인간을 안 나폴레옹은, 이 예수가 인간일 수 없다. 인간은 더 어리석고, 무지하고 더럽기 때문이다. 이 소경도, 보지 못할 때에는 세상이 보이지 않았다. 참 인간을 몰랐다. 그러나, 눈이 열린 순간 보인 것은, 인간의 진짜 모습, 부모의 진짜 모습, 종교인의 진짜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구세주가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존 칼빈이 이렇게 해석한다. 「이 소경이 만약 눈이 보게 된 이후도, 유대교에 속하고, 회당 안에 계속 있으면, 그는 조금씩 예수를 잊고, 예수가 못보게 되어,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라! 」외친 저 유대인과 같이 되었을 것이다. 」 이 소경은 쫓겨나서 처음으로 구세주를 보게 되며 이 사탄의 회중안에 속해 있으면, 그는 영원히 예수를 알지 못했다. 그것은 이 소경뿐만 아니라, 마루틴 루터도 그렇다. 그가 로마교황에게 반항했을 때에는, 아직 가톨릭 신자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교황을 향해서, 「당신은 틀렸다. 성경은 그렇게 말 안한다. 」 95조항을 문앞에 걸었을 때에는 아직, 그는 프로테스탄트를 세우는 마음은 전혀 없다. 아직은 가톨릭 신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황은 미친 듯이 노하고, 욕을 퍼붓고, 저주하며 교회에서 내쫓은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가 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때에 그의 마음은 뜨거워지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분명히 명확히 이해한 것입니다. 쫓겨난 후입니다. 그리고 쫓겨난 후,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만일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거짓말의 세계, 종교의식만이 있는 세계, 형식의 예배, 예수도 모르는, 사탄의 회중속에 속해 있으면, 이제 예수를 볼 수는 없다. 쫓겨났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는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소경이 유대인에게 구박받아, 쫓겨나지 않으면, 구세주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서, 예수님도 「너는 인자를 믿느냐?」 물었을 때, 이 소경은 아직 인자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재판에서는 예수가 누군가 했을 때, 예수는 내 눈에 진흙을 발라 【실로암】 샘에 가서 씻어라고 말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대답이었다. 그리고, 내가 씻었더니 눈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인들이 들으려 하지 않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는 예언자라고 생각한다. 」 그리고 종교사람들이 그는 죄인이고, 죄인의 말을 듣는 당신도 죄인이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형식만을 말할 때에, 드디어 이 소경은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분명히 말해서 쫓겨났다. 그러나, 아직 예수그리스도가 눈앞에 오셔도 누군지 모른다. 「너는 『인자』를 믿느냐? 」하고 들었을 때, 『인자』가 누구신지요? 되묻고 있다. 「그것은, 나다. 」드디어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원문은 『절했다』, 예배했다는 의미다. 이 예배했다는 단어는 사마리아 여자가 나오는 곳에서 씌어져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이 때의 예배입니다. 사마리아의 여자에도 그랬습니다.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예언자라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영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의 조상 야곱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까? 저는 지금,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을 때에 예수님은, 「내가 바로 그 메시아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 때 사마리아 여자도 예수님을 예배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보게될 때까지는 예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경은 그 전에 예수그리스도를 예배한 적은 없습니다. 눈이 보인 후도 예배 하지 않고 있다. 예수가 눈앞에 나타난 후도, 「당신은 누구세요? 」하고 묻고 있다. 사마리아의 여자도 그렇다. 그러나 어떻게 예배하며 좋은지 모르고 목말라 있었다. 인자가 누구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그 분을 믿겠습니다. 그들은 가르쳐 줄 인자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눈앞에 오셔도 누구인지가 모릅니다. 예배 할 수 없습니다. 누구인지 모르는 하나님에게 어떻게 사람은 예배하겠습니까? 이 소경은 『바로 나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처음으로 예배했습니다. 이 소경은 회중에서 쫓겨나서, 눈이 열리고, 예수가 누구인지 알았을 때, 처음으로 예배할 수 있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마가 복음서에서도 침을 뱉으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장면이 있습니다. 처음 침을 뱉으시고 손을 얹었을 때는 이 맹인은 아직 흐릿하게 사람이 보이지만, 나무가 걸어 다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이 손을 그 사람의 눈에 얹으시고 안수하시며 그의 시력은 회복되어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분명히 보일 때까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소경도 처음은 예수가 누군지 모르지만, 눈이 보게 되고, 세상이 얼마나 더럽고, 사람이 얼마나 더러우며, 종교인들이 얼마나 더러운지 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나타났을 때, 처음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로 알고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일하시는 것입니다. 아니었으면 예수그리스도를 그 누구도 예배할 수 없다. 계시록에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천을 향해서 경고 한다. 「네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되어 아무 부족함이 없는 것같이 느껴지겠지만 실제로는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임을 모르고 있다. 네 눈에 바를 안약을 사라.」 예수를 예배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는 예수가 안보인다. 그러므로, 안약을 바르고 빨리 회개해라. 열심히 회개해라. 그리하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는 경고를 성령님이 하신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모른다. 이사야가 말한다. 이방인, 하나님의 이름을 몰랐던 백성들이 나를 찾아내며, 그 이방인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가 온다. 정말로 그 대로입니다. 종교인의 눈에는 안보이는데, 이방인의 눈은 하나님을 보게 된다.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 가, 하는 경고를 주고 있다. 그리고 그 후,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말합니다.

∼ 「나는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 ∼

예수님은 「 심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냥 심판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 그럼 왜 여기서 예수님이 심판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셨는가? 예수님께서는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빛이 나타났기 때문에, 말씀이 오셨기 때문에, 진실의 하나님이 드러냈기 때문에, 마귀 자식이, 어두움의 자식이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예수님이 구원하러 온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와 그 자식들, 어두움의 속한 종교인들, 이 가짜는 오히려 분리되어 버린다. 하나님께서 분리 시키십니다. 진리 밖으로 내버리신다. 그때까지는, 뒤죽박죽 섞겨 있다. 어떤 단체에 합류하고, 교회안에서, 한 곳에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 빛, 진리, 하나님이 왔을 때에는, 심판이 일어난다. 어두움의 자식은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제 이미,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심판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우리가 소경입니까? 」노하며 물었다. 저는 알고 있다. 그러니 설마, 그것이 내가 아니지요? 설마 우리들이 맹인입니까? 이 말은 자기들에는 죄가 없고 스스로 의인이다는 말이다. 제가 보이고 있고 지금까지 죄인을 가르쳐 오고,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쳤다는 주장 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은 소경이라고 안하고, 「 너희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죄가 없겠지만, 지금 너희가 우리는 본다고 말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남았다. 」말씀하셨다. 「스스로 보인다고 하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았다.」 결정적인 심판이 내립니다. 『죄가 남았다』이 뜻은 죄가 머물다. 죄가 사라지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는 보이고 있다. 하나님을 알고 있다. 저는 기도하고 있고, 십일조 헌금을 했다. 교회 봉사도 하고 참고, 희생 하고, 목사를 섬기며 부족함이 없다고 하기에, 당신의 죄는 남는다. 당신의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결정적인 심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정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했을 때에는, 용서받지 못한다. 그 죄는 뭔가 하면, 소경이 눈을 뜨고, 죄인이 용서받고 기적을 맛보고, 은혜를 받은 후에, 예수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사람은 용서가 없습니다. 이 기적을 보면서, 은혜를 보면서, 이 진리를 알면서, 듣고 있으면서, 축복을 받으면서, 여전히 예수그리스도를 부정한다면, 한번 더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야 한다. 그러나, 설마 그런 일은 없다고 바울은 이야기한다. 다시 예수를 십자가에 달릴 수는 없습니다. 은혜를 받고 그래도 부정할 경우에 죄가 남는다. 그 죄는 머물게 된다. 이것이 오늘 9장에서 배울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습관적으로 몇 년이나 계속했을 경우에 회개할 기회는 없어진다. 가장 무서운 것이 회개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심판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은혜에서 분리될 이유입니다. 죄를 용서받는다. 이것이 구원의 교리, 십자가의 교리, 진리입니다. 자기는 죄가 없다, 하면 예수그리스도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진정으로 예배 할 수 없다. 그리고 1세기말의 크리스천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떠난 제자들이 많이 있었다고 요한이 여기서 경고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보인다고 말하지만, 정말은 소경인 것을 모른다.

지금은 병든 시대, 하나님 믿기가 너무나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 사망과 어두움에서 구해내고,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시는 분은 예수그리스도, 이 분만입니다. 그리고 유일한 소망입니다. 형식으로 예수님과 못 만납니다. 형식으로 예배하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은 마음으로 예배드립니다. 아멘. 

Jesus Christ Glory Church

イエスは言われた。 「わたしは、よみがえりです。いのちです。 わたしを信じる者は、死んでも生きるのです。 また、生きていてわたしを信じる者は、 決して死ぬことがありません。 このことを信じますか。」 ヨハネ11章25,26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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