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장20-36절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
예루살렘의 입성 뒤, 온갖 사람이 모여서 그 사람에게로 따라간다는 바리새인의 말이 지금에 와서는, 예언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 그런데, 축제 때문에 예배를 위해서 올라 온 사람들 속에, 【그리스】인이 몇명 있었다. ∼하는 이 그리스인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길 원에서 지금 와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예수님께서 계신곳에 사람들이 모여 온 것이, 드디어, 그들은 스스로는 알지 못하면서, 예언 한 것으로 되어버린다.
이 유월절 축제의 순례 위해서 온 이 그리스인은 도대체 누구냐 하면, 바다를 넘어서 온 그리스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마리아 지방에는, 그리스인의 도시가 있었고, 거기에는 그리스인들이 살아 있었으므로, 사마리아에서 순례하로 온 사람이라고 생각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매년 와 있다. 아마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에요. 유대인과 같은 완전한 유대교가 아닌, 할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이스라엘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믿고, 1년에 한번 유월절 축제를 맞이하기 위해, 매년 순례하며, 하나님을 믿어서 공경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와 있는 그리스인이라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인이 예수님이 있는 곳에 온 이유가, 이 요한의 복음서에는 쓰여지지 않고 있지만, 다른 복음서에는 쓰여져 있고, 수전절 축제 때에,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셔서, 비둘기를 파는 사람이나 환전인의 시장의 대를 부수어서 화낸, 그 장소가 이방인의 마당입니다.
이방인은, 이 유대인과 함께 성전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전 바깥에 마당에 이방인의 정원라고 말하는 것이 마련되어져 있어서, 아득히 멀리에 성전을 바라보면서 순례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방인들은, 비둘기를 파는 사람이나, 환전인의 대를 예수님이 부수고, 하나님의 집은 만민을 위해서, 이방인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하나님의 기도 집이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있었던 그리스인, 즉 성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유대인으로부터 차별을 받고,그리고 순례를 위해서 하나님을 공경하기는 하지만, 가까이 가지못했던 사람이, 예수님이 이방인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기도의 집이라 말하는 것을 듣고, 그리스인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더 자세하게, 그 가르침을 들으려고 지금 모여 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이방인들이 【빌립】을 통해서 또, 【안드레】를 통해서, 「뵙고 싶다 」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그 말을 예수님께 전했습니다. 요한의 복음서는, 이 그리스인과 예수님이 만났다고 하는 기사는 없습니다. 그 후, 직접 만난다든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 묘사는 없고, 갑작스럽게 예수님이 이 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
이라고 말씀하셨다. 영광을 받을 때가, 드디어 왔다고 하는 말씀은, 그리스인들이 예수님을 찾아 온 뒤, 예수님이 말하시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가나의 혼례 때에, 연회의 한창 포도주가 바닥났을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이제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고 했을 때, 「여자 분, 저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라 말하고 있고, 또 초막절 축제 때,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면, 공식적으로, 초막절 축제 때, 예루살렘에 가서, 자신을 온 세상에 알리십시오 」하는 싫은 소리에 대하여도, 예수님은, 「아직 내 때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으로 드디어 예수님이 자신의 때가 오며, 영광을 받을 때가 이제 온 것이다, 드디어 여기에서, 이야기가 시작할 그런 무렵에, 이방인까지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모하고 올 때가 되고, 드디어 내 때가 온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한 밀알의 보리가 만약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그것은 한 알 그대로 있지만, 그러나, 만약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
자신의 때는, 어떠한 때냐 하면, 자신이 죽으면 풍부한 열매를 맺고, 내가 하늘로 올라 가면, 자신의 곳에 모든 사람을 모을 수 있다. 라고 지금 대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많은 사람이 구속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때라 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하시는 뜻을 이해를 못 합니다. 그리고 2세기경에 있어서도, 어떤 문헌 안에 유대인과 기독교 학자의 논쟁한 기록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만일 예수그리스도가 인자라 불리는 【메시야】이였다면, 그가 십자가로, 게다가 나무 위에서 저주받으면서 죽어서 끝마칠리가 없다. 그리스도(Christ)는 죽고 약하고, 패배한 모습으로 나타날리가 없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Christ)가 아니다. 고 논쟁하는 서적이 있다. 유대인대 기독교의 논쟁이다. 그 『인자』 이 말은, 다니엘서를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7장 13-14절 ~내가 또, 밤에 환상을 보고 있는데, 마치, 사람같이 생긴 인자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왔다, 그가 영원 전부터 살아 계신 분께 나아가자 그 앞으로 인도되었다. 이분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셔서,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기 다른 말을 쓰는 모든 사람은, 그를 섬겨야 했다. 그 주권은 영원할 것이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
여기에서, 다니엘서 7장 13-14절에, 『영원전 부터 계신 분으』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이 분은 영원으로 인도 되어서, 그리고 그분에게 모든 권위가 주어져, 영원히 그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 【메시야】에 대한 다니엘이 본 환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용하고, 영원히 사는 분이 십자가로 죽을 리가 없다. 고 말하며, 2세기에, 유대인과 기독교 학자가 논쟁한 것이지만, 여기에서도 그리스인들은, 「당신이 【메시야】인가? 」란 질문을 하고 있을 때에, 내가 죽으면, 그 영광이 나타나고, 내가 죽었을 때에 사람들이 내 있는 곳에 불러 모인다. 고 들었을 때, 이 그리스인들도 이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후 그리스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들은 율법에서 그리스도(Christ)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분,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왜 당신은, 인자가 하늘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십니까? 그, 인자는 누구입니까? 」라고, 역시 이 그리스인들도 물어 보고 있다. 당신이 그리스도(Christ)라면, 왜 죽지 않으면 안됩니까? 그리스도(Christ)는 영원히 산다고 쓰여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왜 당신은 죽는다고 합니까? 이 사람들이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시도 또 2세기에도 그러했다. 정말로 사람이, 예수님이 죽어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이해 안한다. 이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에요. 옛날부터 조만간 이르기까지.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내 때가 드디어 오고, 나의 한 알맹이의 보리가 땅에 떨어져서 죽고, 십자가로 죽고, 그 때에 영광이 나타나 열매를 맺고, 내가 살아나서 천국에 들어갈 때에는, 전세계에, 이방인에게까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게다가 2천년후의 우리들에게도 이른다,고 하십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게 모아져 간다. 그것이 내 때가 온 것입니다. 그런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듣고 있는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리스도(Christ)는 누구인지요? 예수는 이 십자가로 죽기 위해서 오셨다. 이것이, 【메시야】의 직무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지금 나의 마음은 술렁거리고 있다. 뭐라고 할까? 『아버지여. 이 때부터 나를 구해 주세요』라고 말할까? 아니. 이 일 때문에야말로, 나는 이 때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여. 거룩한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 그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영광을 이미 드러냈고, 또 다시 한번 영광을 드러내자. 」~
예수님이 하늘의 아버지에게 하신 이 기도 내용은, 요한복음서에서는, 다른 복음서에 나오는 겟세마네의 기도의 내용과 같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요한복음서에는 씌어져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자갈을 굴릴 수 있을 만큼의 거리로, 야곱이나 베드로나 요한 앞에서 최후의 기도를 하는, 그 기도입니다. 그 때에도, 「나는 괴로워 죽을 지경입니다. 」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예수님의 기도, 겟세마네의 최후의 기도는 베드로들에게 고백 할 정도이었어요. 저는 슬픔 나머지 지금 죽을것 같다, 라고. 그리고, 하늘의 아버지여, 할수 만 있으면 내게서 이 잔이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길 원합니다. 라고 기도할 때에, 천사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예수님을 격려했다고 하는 것이, 다른 복음서에서는, 겟세마네의 기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는 겟세마네의 기도는 씌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2의 겟세마네 기도를 예수님은 여기에서,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수전절 이야기의, 환전인을 쓰러뜨린 장면도 요한은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던 그리스인, 이방인들, 즉 성전에는 들어갈 수 없는 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찾아 온 이야기는 요한만이 썼다. 그리고 겟세마네의 기도 장면도, 요한은 쓰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요한은 겟세마네의 기도를 한번 더 재현하듯이 쓰여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괴로워 슬픔으로 지금 죽을 지경이다. 」라고 말하셔서 하늘의 아버지에게 기도할때,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도 같고, 「이 잔을 내에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하며, 「이 때부터 나를 구해 주세요」 와 같은 내용을 말하십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영광을 드러내 주세요」 하는 말과,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는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기에서, [아니요, 이 때문에야말로 저는 이 때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자신의 일을 밝히는 것입니다. 당연 예수님은 이런 기도를 하셨지만 이 일은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정하시며,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제거되어질 수는 절대 없습니다. 이제 결정되여 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에요. 그 때문에만,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때문에, 오늘에 이르렀다. 」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예수님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이 일을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야】란 누구인지요? 그리스도(Christ)는 누군가요? 예수님은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오셨던 【메시야】입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다고 하는 이야기도, 다른 복음서에서는 겟세마네의 기도때, 천사들이 내려 와서, 예수님을 격려했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왜냐하면,
∼ 그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영광을 이미 드러내었고, 또 다시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 곁에 서서 이 소리를 들은 많은 사람이 천둥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중에는, 「천사가 저 분에게 말 하였다」라고 했다. ∼
확실히 주변의 사람은 그 소리가 들리고 있어요. 그러나, 번개의 소리처럼 들리고, 혹은 천사들이 하는 말 같기도하고, 그러나 그 내용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리,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리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내용은 다른 군중에게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히 하늘의 아버지는 영광을 한번 드러내고, 지금까지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살아나게 한 기적을 행하실 때도, 영광을 드러내 왔지만, 【나사로】를 살아나게 할 때도 하늘의 아버지, 영광을 나타나소서 ,라고 예수님이 기도하신 대로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수많은 영광이, 하늘의 아버지 영광이 보여졌지만 그러나, 『내가 한번 더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하고 말씀 하십니다. 그것은, 이 때를 위해서 내가 왔으므로, 하늘의 아버지 영광이 드러내지기를 원하며, 그것도 어디에? 십자가 위에서. 그리고 나는 드러낸다,고 하늘로부터 말씀 하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저 겟세마네의 기도와 같이, 곧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 온 것처럼, 영광을 드러내셨다. 지금, 곧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고, 이 일은 예수님 혼자 정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가 정하셔서, 그리고 하늘의 아버지가 기뻐하고, 하늘의 아버지가 영광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예수님도 그 때문에,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이 것 때문에 내가 왔다고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소리가 들린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들린 것이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할 때가 되었다. 지금, 이 세상의 지배자가 쫓겨 날 것이다. 내가 지상에서 올라가게 되면,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 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떻게 죽으시는지를 가리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
이 소리가 들린 것은,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들린것이다』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린데도, 수많은 기적을 본 것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복음을 들으면서도, 좋은 소식을 들은 것도 상관 없이, 예수님을 증오하고, 거절하고, 죽이려고 해서 믿지 않아던 사람은 심판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 심판의 때가 온 것이다, 이제 그 시간이 됐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천국에서 완전히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태까지는 예수님이 인내에 인내를 하시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때가 드디어 오고, 내가 이날을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시며, 그리고 하나님도 또 다시 영광을 드러내리라 하는, 『그 때』라고 하는 심판의 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심판되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심판되어, 하늘의 나라에서 쫓겨나는 그 때가 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는 것은, 그 모든 지배권이 예수님에게 전부 옮겨져 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상에서 올라가면,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모을 것이다. 」~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이에요. 3일후에 죽음에서 살아난 예수님이, 그 이후, 천국에 돌아갈 때에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이방인도, 다음 세대도 그 다음 세대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온다. 그것도 시간을 초월해서 예수님이 전부 한번으로 완성시키신다. 어디에서? 십자가 위에서. 이제, 내 때가 오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가 오고, 그리고 이 것때문에 내가 왔고, 그 때에 믿는 사람은 구속되며, 믿지 않은 사람은 심판 받는다. 어느 시대의 사람도 다 그렇습니다. 이 때가, 이날이 심판 때인 것입니다. 이제 이미 심판 받는 것이에요. 왜입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믿은 사람은 이제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자식이 됩니다. 어느 시대의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이, 어떤 식으로 죽으시는가, 그 영광을 드러내시는지를 말씀하신 후에, 35절, ~「아직 잠시만, 빛은 더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어둠이 너희들을 사로잡히지 않도로, 너희들은, 빛이 있는 사이에 빛을 믿으라. 어둠 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
라 하는, 이 어둠이 너희들을 사로잡히다,는 말은 따라잡는다, 라는 의미이다. 그 따라잡는다는 것은, 이긴다고 하는 의미이며, 이 『따라잡는다, 습격한다, 이긴다』 하는 말은 성경에 두 군데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특별한 단어이며, 그 두 군데의 단어는, 여기와, 어디에 나오냐 하면, 요한1장 5절의
~빛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지만. 어둠은 이것에 이기지 않았다. ~
이렇게 나온다.이 『이기지 않았다』하는, 이 두 장소에서만 나온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어둠은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는 어둠은 이길 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확실히 예수님은 어둠속에서 빛나기 위해서 오셔서, 그리고 사탄이나 어두움의 힘은 예수님에게 이기지 못했다. 죽음을 멸하신 예수님께 아무도 이길 수 없고, 죽음도 예수님께 승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너희들은, 빛이 있는 동안에 열심히 빛 안에서 믿으세요. 왜냐하면, 그 어둠이 여러분들을 따라잡아, 이기고, 당신을 삼켜버리지 않기 위해서 이다, 라고 하는 말이에요. 그리고,
~어둠 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른다. ~
캄캄하면 앞이 보이지 않지요. 골을 모른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모른다. 어디서 실수하고 있는지도, 무엇이 옳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인생의 실종자와 같은 것이지요. 그것은,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멸망치 않도록, 라고 하셨습니다. 어둠이 너희들에게 이기지 못하도록, 빛이 있는 동안에,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에게 빛이 있는 동안에,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빛을 믿으라. 」 ~
그러므로, 나를 믿으세요. 왜냐하면 어둠이 너희들을 습격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어서 부활하심을, 그것을 믿었다고 말해서 자동적으로 빛 안에 있다고는 말할수 없다고 한다. 어둠이 당신을 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들이 『빛이 있는 동안에』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갈 동안, 예수님이 재임할 때까지 그 동안 그렇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혼의 죽음이 있다. 살아 있으면서 죽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는 살아 있어도 마음이 죽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요. 그러므로, 복음이 전해지고, 예수님에게서 경고가 주어져, 그리고 기도하라고 듣는 그 때에, 열심히 그것을 따르라. 이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너희들에게 말한다. 한 알의 보리가 만약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그것은 한 알 그대로 있지만, 그러나, 만약 죽으면, 풍부한 열매를 맺습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고, 이 세상에서 그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보존해서 영원한 생명에 이른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그 사람은 나를 따르라.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어야만 한다. 만약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높이실 것이다. ~
오늘 여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죽어서 한 알맹이의 보리가 되어, 진실로 사람들의 죄가 용서되며, 예수님의 부활 후에 많은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께 따라가게되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말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어버린다. 이 세상에서 그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보존해서 영원한 생명에 이른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한다』 『자기의 목숨을 미워한다』 이것이 도대체 어떤 뜻인가? 유대인은, 한사람의 남자가 두사람의 아내를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더 사랑하고, 더 마음이 가는 상대가 있습니다. 그것을 사랑하는 아내라고 말해요. 거기에 비해서 사랑 못 받은 쪽을 미워하는 아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미워서가 아니지요? 미워하면 결혼 하지 않지요, 인간이기 때문에, 똑 같이는 어렵습니다. 더 좋아하는 쪽이 있어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아내』 『미워하는 아내』 이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성경 구절에도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해요. 「사람은 부귀와 하나님을 양쪽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한 쪽을 사랑하고, 또 한 쪽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여기에서, 사랑한다, 미워한다고 하는 것은, 둘중 하나를 고를 때에요. 둘중 어느 쪽인가 하나만을 선택할 때, 그 선택이, 고른 하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며, 안 고른 또 한쪽은 미워하게 된다. 더 중요해서, 그 쪽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쪽은 미워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언제, 예수님을 밉다고 했나? 언제, 돈보다 예수님을 밉다고 말했나? 라는 뜻은 어느 쪽도 미운 것은 아니고, 양쪽의 주인에게는 섬길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을, 가볍게 보면, 양쪽 다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처음부터 하나만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둘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내 목숨을 미워하는 선택을 하라는 것이에요.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나를 섬기는 사람』 이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섬기는 사람은, 「나를 따르라,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다시 말해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에요. 여기는, 목사라든가 평신도의 구별은 없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든지 자기의 목숨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 맡겨서 나를 따르라. 」 이것이 예수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순교도 물론 의미해요. 예수님이 먼저 죽으셨습니다. 기독교는 많은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그 순교자의 피가 우리의 마음에 영향력을 끼친 것은 사실이에요. 진실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순교자 안에는, 정말로 로마 시대에 짐승에게, 사자의, 그 송곳니로 죽은 사람들이 많으며, 【안테오케】의 사교도, 당시 로마에서, 사자의 송곳니로 죽음을 당한 순교자입니다만,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빵이다」 이 말은, 한 알맹이의 보리를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하나님의 거룰한 빵이라면, 사자의 송곳니도 두렵지 않다. 그러므로, 한 알맹이의 보리가 땅에 떨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라고 하는 것을 그 순교자가 마지막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순교자가 있어요. 【스데반】도 그렇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후, 그 열매로, 【사울】이라 하는 청년이 그 뒤로 바울이 되고, 위대한 선교사, 위대한 사도가 되어, 요한•베드로•야곱도, 야곱은 최초의 순교자가 되며. 그리고 사도들도 끝내는 다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 위에 교회가 세워져 갔습니다. 베드로의 순교 당한 곳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세워집니다.
순교의 피로, 일본에서도 그렇고, 어느 나라에서도, 선교사들의 희생의 피가 있었기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져 갔어요. 이것이, 틀림 없는 예언이 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예수그리스도에게 모아져 , 교회가 예수그리스도를 경배하며 찬양한다는 그 예언대로, 성취되고 있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피의 역사이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자기의 목숨을 미워한다는 것은, 육체의 죽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섬긴다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이웃에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해요. 심판의 때, 오른쪽으로는 양, 왼쪽으로는 염소를 두고, 심판하게 된다고 말씀하신 후에, 오른쪽 양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내가 병들었을 때 문안해 주었고, 가난할 때, 윗도리를 입혀 주고, 먹을 것이 없을 때,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에, 당신은 내 오른쪽, 천국으로 들어가서, 그리고 내 기업, 천국의 상속자가 되라. 」고 말했을 때에, 왼쪽에서 심판 받은 염소들은 주님께 이렇게 말해요, 화내면서 「언제, 예수님이 가난할 때, 옷을 안 입히시고, 언제 예수님이 병들었을때 돌보지도 않고, 언제, 예수님이 배가 고플 때 먹을 것을 안주었습니다? 우리들은 평생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고 말할 때에, 예수님은 이렇습니다. 「나 이름을 위하여, 이 약한 자를 살린 것이, 곧 나를 섬긴 것이다. 」고 예수님은 말씁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예수님을 섬긴다』는, 교회의 봉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 활동이나 기도나 예배만 말하는 것은 아니고, 눈앞의, 네 이웃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섬기라고 하는 뜻이에요.
그리스도교의 원리를 모르면, 이 이웃 사람에게 섬기는 것도 , 인간적인 감정이 들어갑니다. 인간적으로, 뭔가 베풀기를 원하고, 인간적으로 자원봉사 활동하고, 밥을 만들거나 하는 것이, 이웃사랑이란 착각이 와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교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나 중심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여기에서 말하시는 것은,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면, 하늘의 아버지 영광이 나타나고, 그리고 많은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주님의 일이며, 하늘의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 것이 사람에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는 일인가요? 사탄의 자식으로, 멸망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죄인이며,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심판 받고 지옥에 갈는 수 밖에 없었다. 누구든지 인간은, 선한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는 아무런 의도 이웃사랑도 없습니다. 감정적인 애정은 나 중심이며, 진실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 받을수 밖에 없었던 존재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전부 떠맡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시고, 우리들의 병을 고치고, 죄를 용서 하셨다. 그 행위가 없었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저 사건이 없었으면, 인간은 누구 하나,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계시는지도 몰라요. 예수그리스도가 중보자가 되주셨기에, 우리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수 있었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나에게 믿음을 주어서, 믿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알았지만, 예수님이 이 성령을 주시지 않았으면, 우리들의 혼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 마저 모릅니다.
알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이 공적이 없었으면, 우리들은 믿기는 커녕, 그 임재도 알지 못한다. 그만큼 둔하며, 정말로 악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스스로 안됩니다. 아니요, 하나님에게 반항해서 반역하고 싶은 것이 원래 인간입니다.
태양 보고, 별을 보고, 하나님은 있을 것이다고 정확히 믿을 수 있을 만큼, 인간은 순수하며 거룩하지 못한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이라 입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안다고 말 못한다. 이 세상에는 제 육감으로, 마귀들을, 천사들을 보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의 소리가 들려도,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에게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 그 믿음이 바로, 구원이며 은혜입니다. 그것이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죽으시지 않았으면 못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삼일 밤 무덤속에 들어가서, 이 지옥의 문, 죽음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 없었다면, 우리의 구원의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한 알맹이의 보리.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에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는 것인가? 그것을 알면, 내가 이웃사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에는,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은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입으셔도, 전지 전능하시며, 육체가 있어서 눈에는 안보이지만, 창조주입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하나님이었어요, 그것을 숨기고, 보이지 않게, 죽기까지 순종 하셔서, 무덤 안까지 들어간 것입니다. 죄인의 한사람으로 취급 당하셔서, 저주받은 나무의 사형이있어요. 이 예수님이 전부 버리고, 영광을 버리고 이뤄진 이 일이 정말로 나 구원이라면, 【메시야】의 길이, 한 알맹이의 보리가 되는 길이었다면, 그것을 믿은 우리가 같은 길을 가고, 자기를 버리고, 예수님과 같은 그 길을 가고, 이웃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죽게 해서, 자기 생각을 죽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애정이나 감정으로, 누군가에 밥을 만들고, 뭔가 자신이 눈에 띄고, 사랑받아서 인정받으면, 이웃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먼저, 자신을 버리셨으니, 구속된 생명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은 사람이, 거기를 따라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섬기며, 따르라. 그것은 자기을 버리며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교리에요. 태어나면서의 인간의 본성은, 예수님을 모릅니다. 십자가의 교리, 예수님이 메시야이며, 그리스도(Christ)이었던 그 의미를 모르면, 그 은혜가 이해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스스로는 아무 선한 것이 없고, 의도 없습니다. 자기 의를 드러낼려면, 사탄의 성질입니다. 사람 속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허무하게 하는 일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아야 성령님이 일 하셔서 이웃이 구원을 받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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